갤러리 무모는 future Artist with MUMO 8번째 기획전으로 김수정작가의 ‘열려 젖혀진 음모론자의 방, 암호화된 지층으로부터 인출된 사유에 관하여’을 2026년 6월 27일부터 7월 26일까지 진행한다.
김수정의 회화는 연속적이고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에 정면으로 균열을 낸다. 차트가 시간을 수평적으로 전개해 ‘해독된 데이터’를 보여준다면, 김수정의 회화는 시간을 수직적으로 압축하여 화면 뒤로 사건을 은닉하는 ‘암호화된 지층’을 축조한다. 그의 작업은 규격화된 틀을 벗어난 단 하나의 캔버스 천에서 출발한다. 전면적인 붓질의 층위가 쌓여갈수록 과거와 현재는 선형적 순서를 잃고 동시적으로 공존하며 용해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은닉의 과정이 평면의 단순한 시각적 효과를 넘어, 캔버스의 ‘물리적 무게’를 경신하는 실존적 행위라는 사실이다. 침묵하는 화면 아래 깔린 시간의 부피는 묵직한 시공간의 덩어리가 되어 존재를 증명한다.
작가는 이 무거운 지층을 응시하는 데 머물지 않고, 스스로 ‘음모론자’가 되어 표면 아래 박제된 흔적들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거대한 천을 다시 여러 크기로 해체·분할하여 독립된 틀(frame)에 얹고, 과거의 파편을 현재의 화면 위로 과감히 이식한다. 이 인출과 이식의 과정은 선형적 시간을 거스르는 ‘4차원적 편집 방식’이다. 하나의 근원을 공유하는 분리된 조각들은 시공간의 간극 속에서 발생한 오류, 착각, 변주된 진실의 파편들과 충돌하며 다차원적인 시간의 서사를 직조한다.
작가노트에서 명시된 ‘미토(未土, Non-Space)’는 바로 이 교차로에서 탄생하는 개념이다. 미토는 현실이라는 의식의 표면과 무의식이라는 존재의 심연 사이에 위치한 ‘지각의 문턱(threshold)’이다. 물질적 공간(土)이 되려는 잠재성을 품고 있으나 아직 완전한 실체로 굳어지지 않은 비물질적 파동의 영역, 즉 과거의 흔적과 미래의 잠재성이 충돌하며 다가올 풍경을 예감하게 하는 존재 발생의 장이다. 이번 전시는 그 문턱에서 포착된 사유의 증거들을 은밀하게 저장해 둔 ‘서랍장’인 셈이다.
이 서랍장에서 인출된 사유의 조각들은 회화를 넘어 다원적인 매체로 확장된다. 인공지능 AION과 협업해 집필한 책 《음모론자의 서랍장》은 회화의 침묵 속에 매몰되어 있던 비물질적 사유를 언어라는 논리적 궤적으로 끄집어낸 추적의 기록이다. 한편, 호주 작가 앨리스 스톡스(Alice Stokes)와의 영상 협업작품은 자연의 피부와 AI가 생성한 매끄러운 기계적 영상을 콜라주 하며 시공간의 뒤틀림을 가시화한다. 서로 다른 차원이 충돌하며 발생하는 글리치(Glitch)와 어색함은, 마치 매끄러운 현실을 뚫고 비져나오는 ‘불편한 팔꿈치들’처럼 관객에게 기묘한 진동을 선사한다.
결국 김수정의 작업은 기록된 과거를 재료 삼아 변형된 현재를 통과시키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감각의 신호를 수신하는 안테나를 세우는 일이다. 관람객은 작가가 자르고 붙여 만든 다차원의 격자 위에서 단 하나의 정답을 찾는 대신, 은닉된 시간의 무게를 감각하고 지각의 문턱을 넘나드는 매혹적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김수정 작가는 The Art Students League of New York에서 Painting을 수학하였으며, 베를린 및 제주문화재단과 강원문화재단 등 여러 레지던시에서 작업했다. 2011년부터 여러 개인전 및 그룹전을 개최했으며, 서울예술재단, Palisades Park Public Library, 뉴저지, Kashya Hildebrand Gallery(런던) 등에 작품이 소장되었다.